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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평력 221년, 이제는 그 역법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어느 날도 여느 때와 같이 밝았다.

아멜리에 제더카이어의 아침은 커피와 함께 시작했다. 늦은 나이에 과욕을 부렸던 걸까, 오전부터 빠듯하게 채운 의과 대학 수업은 각성제를 동반하지 않으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이 정도 여유는 부리지 않으면 언제 되찾을 수 없으니까, 그리 둘러대며 오늘도 배달부가 두고 간 신문을 탁자에 펼치는 것이다.

근 1년 신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팔마리움 기술을 대체하는 인쇄 기술을 개발해냈고, 언론의 가짓수도 부쩍 늘었다. 논조 역시 다채로워졌다. 보수적인 신문사에서는 여전히 제국을 칭송하기에 바빴지만 대중의 눈치를 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편 민간 대상 타블로이드에는 풍자만화가 나날이 실렸다. 아멜리에가 펼친 신문에도 부서진 배를 타고 얼싸안은 황제와 교황이 그려진 그림이 돋보였다.

전면에는 <제국, 무프라시아 통치 포기! 연방의 쾌거! 각지의 운동 물결 이어져>라는 대서특필이 자리했다. <교단이 숨겨온 이계의 비밀, 이계인과의 첫 대화> 등의 르포도 눈에 들어왔다. 각지에서 대행자들의 실조지역 피해 복구 활동이 한창이라는 소식 역시 보였다.

이렇게 나날이 터지는 소식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많은 일이 있긴 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거점으로 집결해 계획을 수립하고 총공격에 돌입한 투사들이며, 암약하며 진실을 전하는 의인들이며.

 

한편 구석에는 작게 종교인의 칼럼이 기고되어 있었다. ‘진정한 리브의 가르침은 균형, 세계의 불평등을 해소해야’라는 논지의 글이었다. 그러고 보니 요 사이 정교에서 새 종파가 만들어지고 있었더랬다. 개인의 수행과 깨달음을 강조하는 그 종파는 민중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되어 인기를 얻고 있었다. 여기에 일조하는 신도를 내가 알았지. 입가에 절로 미소가 올랐다.

세상은 기억할까? 이들이 한때는 활로를 여는 자라 불린 군인들이었다는 것을.

이 기사들 외에도, 대륙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격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발점을 알 수 없는 소문이 제국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빠르게 퍼지며 많은 사람들을 흔들었다. 편지로 들은 소식이 후일 막대한 여파로 돌아오는 것을 마주할 때는, 나만이 이 연결고리를 안다는 자부심에 가슴이 간질거리기까지 한다.

신문의 작은 지면은 그들의 업적을 담기에 부족하다. 수십 권에 달하는 장서각을 세운다면 모를까. 아, 누군가는 정말로 그러고 있을지도.

아직은 세상에 내보이기에 이를지도 모른다. 여전히 제국은 막강하고 건재하고, 교단 역시 더욱 기세를 몰아 개혁으로 위장한 새 권력 다툼을 치르는 중이다.

이 혼란을 틈 탄 강자들의 물자 독식 역시 과격하여, 세계 어디서는 아직도 발현자가 납치되고 고아들이 팔마리움 광산에 내던져지고 있다. 이 모든 일이 또 다른 누군가의 계략에 이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1년이다, 고작 1년.

그 짧은 시간 만에 이리 많이도 바뀌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바꾸어 나갈 것이다. 진실을 전하고 진심을 전한다면 돌려놓지 못할 것은 없다.

그때는 우리의 이야기도, 세계 저편 그들의 이야기도 세상에 드러날 수 있겠지. 모두가 새로운 신화를 알게 되겠지. 인류와 인류가 이룩한 인간의 이야기를, 온 하늘이 알게 되겠지.

벌써부터 저잣거리에서는 어떤 노래가 들려오는 중이다. 세계의 위기를 폐하고, 진실을 가리던 장막을 내리고, 문을 닫은 자, 스물다섯 명의 클라우수라(Clausura)의 이야기가. 연천탑의 종시를 고하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직은 한갓 이야기일지 모른다. 바람에 섞여 사라지는 낭설일지 모른다. 민담이 전설이 되기 위해서는 증명이 필요하다. 역사에 남을 분명한 족적이.

그러니 그때까지 나아가자, 우리의 두 다리로.

기울어진 세계를 끝없이 걸으며, 우리의 무게로 평형을 맞춰나가자.

신문이 덮이고 의자가 끌어당겨졌다. 이곳에 놓일 새 역사를 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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